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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치안센터 폐쇄되자 '112 출동 시간' 1분 늘었다…"인구 적다고 범죄 안 일어나나"

  • [지방소멸④] 치안센터 폐쇄된 무의·무변·인구감소 공통지역 '경북 봉화군' 가보니...

  • 굳게 잠긴 문, 잡초만 무성…흉물이 된 봉화 법전·봉성치안센터

  • 문 걸쇠 몇 번씩 잠그며 국가 치안 부재 체감하는 주민들

  • 봉화서 경찰 1인당 담당 면적 서울의 370배…112 출동시간 서울의 2배 이상

  • "인력 확충 없는 조직 개편…오지 주민 안전권 박탈로 귀결"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법전면 옛 법전치안센터 건물 경찰의 독수리 문양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법전면 옛 법전치안센터 건물. 경찰의 독수리 문양 흔적만 남아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우째 안 불안하겠십니꺼. 밤 되면 깜깜천진데..."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법전면. 구부러진 길을 한참 지나 들어선 마을 한복판엔 2층짜리 상아색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건물 앞에는 깨진 전등 조각이 먼지 쌓인 채 널브러져 있었다. 치안센터 간판이 있던 자리에는 경찰의 '독수리' 문양 자국만 희미한 흉터처럼 남은 모습이었다. 굳게 잠긴 문과 텅 빈 건물 내부,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벽은 국가 치안으로부터 소외된 마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강모웅(80)씨는 사과를 닦던 손을 멈추고 흉물이 된 치안센터 건물을 바라봤다. 강씨는 추워지는 날씨보다 텅 비어버린 마을의 안전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작은 동네라고 해도 경찰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다르지예(다르다)"라며 "밤이면 마을도 어두워지고, 집들도 군데군데 떨어져 있어 불안할 수밖에 없지예(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돌아온다는 얘기는 없니껴(없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26년 전 파출소가 지구대로 통폐합된 후 경찰 1명만 근무하던 법전면은 지난해 '마지막' 경찰관마저 떠나보냈다. 경찰이 인력·비용 효율화 등을 이유로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의 치안센터를 철수시켜 '법전치안센터'마저 전면 폐쇄됐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법전면 옛 법전치안센터 건물 사진최민준 기자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법전면 옛 법전치안센터 건물. [사진=최민준 기자]

치안센터는 통폐합된 기존 파출소 건물 등에 경찰관을 배치해 민원과 지역 치안 수요에 대응하는 시설로, 사실상 지역 치안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현재 이 지역 일대를 관할하는 봉화파출소는 15㎞ 거리에 떨어져 있다. 112 출동까지 15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다. 서울에서 112 평균 출동 소요 시간이 가장 짧은 혜화경찰서(3분 33초)보다 11분 이상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근 봉성면의 '봉성치안센터'도 같은 시기 문을 닫았다. 스무명 남짓한 학생들이 다니는 봉성초등학교가 마을에 남아있음에도 치안센터는 폐쇄됐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 주민들을 안심시키던 치안센터는 이제 갈대와 잡초로 뒤덮인 '흉물'이 됐다. 입구에 붙은 현상 수배 전단만이 겨우 과거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봉성면 엣 봉성치안센터 건물 우측으로 봉성초등학교가 보인다 사진최민준 기자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봉성면 엣 봉성치안센터 건물. 우측으로 봉성초등학교가 보인다. [사진=최민준 기자]

봉성초 경비로 근무하는 강태산(69)씨는 경찰이 지역을 떠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했다. 강씨는 경찰이 떠난 뒤 괜히 불안한 마음에 밤에 잠들기 전 현관문 잠금장치를 몇 번이고 확인한다고 했다. 강씨는 "치안센터 건물의 경찰 간판이라도 떼지 말아야 했다. 사람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방범 효과가 있었을 텐데 다 가져가 버렸다"며 "동네 사람들도 다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인구가 없으니 경찰을 철수시킨 것 같은데 아무리 적은 인구라도 안전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며 "사람들이 지역에서 더 많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왜 더 나가게 만드는 것이냐"고 말했다.

지방소멸에 따른 치안 공백은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이 전국 치안 관서 재편 현황과 112 출동 데이터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25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폐지된 치안센터는 72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파출소 역시 10곳이 사라졌다.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상운면 옛 상운치안센터 건물 내부 사진최민준 기자
29일 오후 경북 봉화군 상운면 옛 상운치안센터 건물 내부. [사진=최민준 기자]

특히 의사가 없는 무의(無醫), 변호사가 없는 무변(無辯), 그리고 행안부 지정 인구감소지역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봉화·서천·정선·평창·횡성·보은·보성·구례·고령·함안·남해 등 전국 11개 지역의 타격이 가장 컸다. 이들 11개 공통 지역에서만 2025년 한 해 동안 치안센터 21곳이 문을 닫았다.

치안 인프라 축소의 여파는 즉각적인 현장 대응력 약화로 나타났다. 해당 11개 지역 관할 경찰서 모두 112 신고 현장 도착 시간이 일제히 늘어난 것이다.

경찰청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112 신고 현장 도착 평균 소요시간' 자료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112 전체 신고(C0~C3) 기준 평균 현장 도착 시간은 2024년 5분 50초에서 2025년 6분 13초, 2026년에는 6분 44초로 매년 가파르게 늘어났다. 불과 2년 만에 현장 도착 시간이 54초, 사실상 1분가량 길어졌다. 

봉화군은 관련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법전·봉성·상운 등 3곳의 치안센터를 폐쇄한 봉화경찰서의 112 전체 신고 평균 현장 도착 시간은 올해 상반기 기준 9분 41초로, 2년 전과 비교했을 땐 2분 4초 늘어났다. 전국 경찰서 가운데 최대 증가폭이다. 생명·신체에 위험이 임박한 긴급신고(C1)의 경우 같은 기간 8분 22초에서 11분 34초로 3분 12초나 길어졌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아주경제]

여기에 초고령화까지 겹쳤다. 2026년 8월 기준 봉화군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6.9%로, 주민 두 명 중 사실상 한 명이 노인이다. 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노인 비중은 늘어나는데 경찰이 책임져야 할 공간은 더 넓다. 봉화군의 행정면적은 약 1202.7㎢로 서울(605.25㎢)의 2배에 이른다. 그러나 봉화서 경찰관 한 명이 담당하는 면적은 10.74㎢로, 서울 31개 경찰서 평균(0.029㎢)의 약 370배다. 이는 기존에도 봉화군의 112신고 현장 도착 시간을 지연시키는 원인이었다. 봉화서의 최긴급 신고(C0) 평균 현장 도착 시간은 7분 52초로 서울보다 4분 11초 길다. 봉화 주민의 경우 서울보다 2배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충남 서천군 역시 치안 공백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천서의 112 전체 신고 평균 현장 도착 시간은 2년 만에 1분 45초 늘어났으며, C1 역시 2분 27초 증가했다. 서천은 지난 2004년 4명이 숨진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해당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서천 지역 한 관계자는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의 기억을 가진 주민이라면 치안 공백이 더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폐건물의 경우 방범 사각지대가 돼버렸고, 주민의 심리적 불안과 생활환경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안 인프라 축소 움직임은 농어촌 오지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 '여대생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범행을 저질렀던 경기 군포시 대야동 일대 역시 지난 2024년 치안 관서 재편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경찰이 대야파출소를 인력 효율화를 위한 '공동체 지역관서'로 전환하려 하자 범죄의 공포를 기억하는 주민 3000여명은 즉각 반대 서명을 냈다. 마을 입구마다 '파출소 폐쇄 결사반대'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결국 경찰이 독자적인 순찰 체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8월엔 하남 미사지구대 통폐합안이 주민 반대로 철회됐다. 대구와 경북 영주, 강원 평창 등에서도 주민과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파출소 복구·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 조직 운영의 비효율성이 지역 치안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경찰은 현재 수사 인력 수요를 기존 치안 경찰로 채우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형식의 조직 개편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땜질식 조치가 반복될수록 지방 치안 공백과 같은 부작용만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조직 개편 과정에서 인력 운용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세워야 장기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