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금융·법률 계약으로 한국 기업 진퇴양난
불가항력 영향 2년 이상이면 계약 해지 가능
사업비 급등에 재홍수 가능성도
"안전 면밀한 검토 필요...철수도 고려해야"
지난 8월 발생한 네팔 대홍수로 약 9000억원이 투입된 현지 수력발전 사업도 기로에 섰다. 사업 재개 또는 포기를 놓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융·법률 계약으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추가적인 손해나 소송 등에 직면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구의 어려움과 지속적인 홍수 피해 우려 등을 고려해 사업 철수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18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남동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네팔 정부는 사고 이후 매몰·붕괴 피해를 입은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 사업의 준공 시기와 공사 일정, 계약조건에 대한 변경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대신 남동발전이 설립한 현지 사업법인 NWEDC는 향후 정부보증계약상 불가항력을 주장하기 위해 네팔 정부에 지난 8월 불가항력을 통지한 데 이어 9월 진행 경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불가항력이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업 계약 수행이 어려울 경우 이에 따른 이행 책임과 피해 배상이 면제되는 것을 말한다.
이어 9월 말에는 국제금융공사, 한국수출입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9개 국제 금융기관으로 이뤄진 대주단에 복귀비, 보험금, 추가재원액 등 확정시까지 대주 권리행사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대주단이 이러한 유예 요청을 온전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현재 대주단은 권리행사 유예에 대한 의견을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며 10월 말에서 11월 초 관련 내용을 검토해서 NWEDC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올해 말 완공은커녕 사업 재개 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내년 3월 본조사 후 사업 재개와 철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업계에선 사업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만약 사업 재개를 결정하더라도 추가 사업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재조달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당초 NWEDC는 상업운전 개시 후 30년 동안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구상이었다.
PF 재조달을 위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직접 운영 기간을 확대하기 위해 네팔 정부와 협상해야 하지만, 재난 복구 등으로 자금적 여력이 없는 네팔 정부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남동발전은 내년 3월 진행하는 복구타당성조사 본조사 이후 사업 지속 시 추가 필요 자금을 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가 홍수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출구 전략이 유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강부식 단국대 인프라건설공학과 교수는 "사업 재개를 결정해도 수력발전용 터널 등이 전부 토사로 막혀 있기 때문에 토사 제거비 등까지 고려하면 사업비가 기존 계획에서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상류 빙하 지역 얼음 상태도 약해졌을 우려가 크고 비슷한 사고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어 관련 조사도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 철수를 결정해도 문제다. NWEDC와 네팔 정부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불가항력 이후 그 영향이 2년 이상 지속되면 양측은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네팔 정부의 귀책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면 복구비 전액과 투자수익을 보장받지만 이번 사태는 홍수라는 천재지변인 만큼 관련 비용을 보장받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대신 네팔 정부의 자산이전대금 지급을 통한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
즉 사업 철수 시에는 PF로 조달한 사업자금(대출금+네팔 정부 미지급 대금+금융비용+자본금) 중 일부를 NWEDC가 가입한 건설종합보험금과 대출상환적립계좌 잔여금으로 상계한 후 잔존한 부채를 남동발전,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 국제금융공사 등 NEWDC의 주주들이 지분법에 따라 나눠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이마저도 재정 상태가 열악한 네팔 정부가 온전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최악에는 한국 기업과 네팔 정부 간 장기 소송전이 시작될 수도 있다. .
한편 네팔 수력발전의 EPC(설계·조달·건설) 사업자인 두산에너빌리티는 고정 총액 일괄도급 계약 아래 단계별 공사대금을 받은 만큼 금전적 피해는 남동발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