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확대 시 조사관이 영업비밀까지 들여다볼 수도
조사자료, 엉뚱하게 해외로 넘어가면 기업 '치명타'
중소기업 기술 탈취 시도를 봉쇄하기 위해 도입된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K-디스커버리)가 특허법에도 확대 적용되면 국내 기술 기업의 기밀이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외 경쟁사나 글로벌 '특허 사냥꾼'이 특허소송을 빌미로 국내 기업 내부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우려다.
12일 정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K-디스커버리 도입을 골자로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지식재산처도 이 제도를 일반 특허침해 소송에 확대 적용하는 특허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소송 당사자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침해 관련 자료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기술침해 피해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은 기술을 빼앗겼다고 의심해도 상대방 내부의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지식재산처가 제시한 특허침해 소송 원고 승소율은 11.1%에 그쳤다.
다만 산업계는 이 제도를 일반 특허소송까지 확대 적용하면 해외 경쟁사나 글로벌 특허관리전문회사(NPE)들이 국내 기업의 기술 자료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한다. 반도체 제조공정 조건과 장비 운용 방식은 제품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핵심 정보다. 특허 침해 여부를 확인한다는 이유로 이런 자료까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올해 내내 다수의 미국 NPE 측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특허소송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국내에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자료가 해외 소송 등에 사용될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확대 취지는 이해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가 해외 소송 등에 전용되지 않도록 사용 제한과 위반 시 제재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대응 비용도 걱정거리다. 기업은 방대한 내부 문서에서 소송 관련 자료와 영업비밀을 가려내야 한다. 지식재산처는 2019년 전문가 1명이 현장조사하는 데 건당 600만원이 추가로 들 것으로 추산했지만 기업의 영업비밀 관리비용에 대한 실증 연구는 추후 진행할 예정이다.
지식재산처는 엄격한 요건 아래 조사를 허용하고 영업비밀이 담긴 보고서의 열람자도 제한하도록 정부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업계는 사후 처벌 정도로는 유출된 기술을 되찾기 어렵다며 보호장치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치권도 문제 의식에 공감한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식재산처와 법원행정처 등에서 자료를 받아 기업 부담과 기술보호 대책을 점검했다. 13일 지식재산처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수진 의원은 "증거 편재로 억울함을 겪는 특허권자를 돕고 중소기업을 구제하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며 "2028년 시행되는 상생협력법의 현장 성과를 우선 검증한 뒤 특허법 전면 확대를 신중히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